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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30 예수의 기적, 예수의 마음 2 (3)
  2. 2009/09/30 예수의 기적 예수의 마음 1 (2)

물위를 걸으심

 


예수의 모든 기적들은 회복이나 치유에 있습니다. 예수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기적을 행하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는 억압과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향한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기적은 병을 고치고 회복시키는 일이었습니다. 문둥병자를 고치시고 눈먼자를 보게 하시며,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고 풍랑을 잠잠케 하시는 등의 기적은 모두 치유와 회복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물위를 걸으시는 기적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치유와 회복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물위를 걸으심이 신비한 기적임에는 분명하지만 물위를 걷는 것 자체는 어떤 치유와 회복과도 어울리지 않는 그저 멋진 퍼포먼스에 불과합니다. 설마 예수께서 나는 물위를 걸을 수 있음을 자랑하거나 2000년이 지난 우리도 예수는 물위를 걷는 능력을 가졌다고 알게 하시려고 야밤에 바다를 걸으셨겠습니까? 그렇다면 예수께서 물위를 걸어가시는 이 사건이 우리에게 전하는 의는 무엇일까요? 사실 저는 이 의미를 도무지 파악하지 못해서 아주 오랫동안 이 본문으로 설교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본문을 며칠 동안 계속해서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저에겐 충격으로 다가온 의미들을 발견하였습니다.

 

위에 적힌 본문 바로 앞에는 오병이어 사건이 등장합니다. 예수께서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입니다. 이스라엘은 성인 남자만을 인간으로 취급했습니다. 그래서 모인 숫자 오천명은 성인 남자만의 숫자입니다. 그러므로 여자와 청소년, 어린이를 다 합치면 이만 명은 될꺼라고 추정합니다. 요즘에 이렇게 숫자를 세면 많은 여성들에게 돌 맞습니다. 하여간 모인 사람의 숫자가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여기에 반해 이들을 통제하고 섬기는 사람들은 예수와 열두제자 뿐이었습니다. 일인당 감당할 숫자가 1,500명에 이릅니다.

 

이제는 모든걸 마치고 돌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2만이 넘는 사람들을 보내고 정리하는데는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됩니다. 예수께서 하루종일 그들을 가르치셨으니, 사람들을 보내고 쓰레기를 줍고 장소를 정리하는 일은 당연히 제자들의 몫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모든 리더십은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멋진 일을 하고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허드렛일을 합니다. 제가 학교에서 조교로 있는데 목사로 일할 때와는 전혀 다른 일을 합니다. 제가 목사로 있을 때에는 복사나 팩스 보내는 일 그리고 짐을 운반하는 일 등은 사무원이나 사찰 집사가 도왔고 저는 나름 폼이 나는 설교와 성경공부 인도 그리고 심방을 하면서 높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조교이다 보니 교회에서는 사무원급이신 분들의 복사도 제가 하고 워드작업도 해주고 짐도 나르는 허드렛일을 합니다. 세상에서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드러나는 멋져 보이는 일을 하고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숨어있는 보잘것없어 보이는 일을 합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예수께서 자기가 혼자 사람들을 보내고 정리하는 힘든 일을 하시면서 제자들은 먼저 배를 태워 보내셨습니다. 이 단 한마디만 나오고 하나도 드러나지 않는 힘들고 보잘것없는 일을 홀로 묵묵히 해내십니다. 이게 바로 예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따르기를 원하시는 리더십입니다. 큰 자가 되기를 원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예수 스스로 모범으로 보여주십니다. 본문의 기적은 바로 이 예수의 마음으로부터 출발합니다. 모두가 큰 사람이라고 존경하는 자신과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제자들을 같은 선상에 두고 오히려 제자들이 해야 할 미천한 일도 기꺼이 행하시는 바로 그 마음이야말로 이 시대 우리가 배워야할 진정한 기적입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다 보내시고 나서 야심한 밤에 다시 기도하러 산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는 새벽 세시쯤에야 산에서 내려오셨습니다. 그 때 예수의 몸은 무척이나 피곤하신 상태입니다. 마가복음은 예수께서 새벽 미명에 조용한 곳으로 가셔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시간까지 기도하셨습니다. 다른 증언은 너무 바빠 식사하실 시간조차 없다고 말합니다. 그토록 바쁜 일정에서 오늘은 특별히 더 힘드셨습니다. 빈들에서 하루종일 강의하시고 그 많은 사람들을 다 보내시고 정리까지 하신 후에 산에서 기도하시고 내려오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피곤한 육체를 위해 누워야 합니다. 그리고는 단잠에 빠짐이 당연합니다. 사람이 피곤하면 만사가 귀찮고 자신의 편안함만을 구하게 됩니다. 아마도 잠이 많은 저같으면 산에서 내려올 때 걸으면서 자고 있었을겁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자신의 마음을 나의 편안함이 아니라 사랑하는 제자들에게로 돌리셨습니다. 바다에 혼자 계셨던 예수께서 제자들을 바라보니 맞바람이 불어서 노를 젓는게 힘들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내가 가서 도와주리라 결심하셨습니다. 여기서 한번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지금 제자들과 예수 중에 누가 더 힘이 들까요? 이 질문에 대하여 답을 하는게 본문을 이해하는 핵심입니다.

 

제자들이 지금 힘든 일은 맞바람입니다. 노를 열심히 저어도 배가 잘 나아가질 않습니다. 하지만 이건 죽을 일도 아니고 배가 뒤로 가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조금 힘들 뿐이고 힘들면 번갈아 가면서 노를 저으면 결국 목적지에 도달합니다. 제가 중학교 시절에 개구쟁이로 살아서 수업시간에 벌을 많이 받았습니다. 수업시간에 떠들다가 선생님께 걸리면 교실 밖 복도에서 무릎 꿇고 앉아 있습니다. 처음 혼자 벌을 받을 때에는 무척이나 힘들고 창피합니다. 하지만 조금 있으면 다른 친구가 나옵니다. 그럼 훨씬 위로가 됩니다. 그러다가 4명쯤 모이면 벌받는 거 아무것도 아닙니다. 벌받는 우리가 훨씬 재미있고 교실에 있는 애들은 불쌍해 보입니다. 벌받는 힘든 일도 같이 하면 괜찮습니다. 왠만큼 힘들어도 함께 하면 좋은 추억이 됩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힘들었지만 12명이 힘을 합쳐서 목적지에 도착하면 그 밤에 힘들었던 맞바람이 오랫동안 공유할 이야기가 됩니다.

 

하지만 예수는 지금 혼자 입니다. 우리는 땅을 잘 걸어 다닙니다. 하지만 칠흑같은 밤에 혼자 벌판이나 산길을 걷는다고 생각하면 오싹해집니다. 저처럼 간이 작은 사람은 혼자 묘지에 가는 극기훈련 같은걸 제일 싫어합니다. 땅을 걸을 수 있어도 혼자 밤에 걷는걸 싫어하는 우리는 바다를 걸을 수 있어도 혼자 바다 위를 걷는 일은 괴로운 일입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바다를 걸으셨다는 본문을 읽으면서 와 놀랍다!, 기적이다 라고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바다 위를 홀로 걷는 일이 과연 즐거운 일인가를 생각하면, 어두운 밤바다를 홀로 걸으셔야 하는 예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함께 힘을 합쳐 노를 젓는 제자들보다 바다 위를 혼자 걷는 예수가 훨씬 힘든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엄청나게 바쁜 하루를 사시면서 온 몸을 가눌 수 없이 피곤하고 지친 몸을 가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홀로 바다를 걷는 일을 선택하십니다. 왜냐면 예수 자신의 힘든 일보다 제자들이 괴로워함이 훨씬 더 고통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어려워하는 모습을 바라보자 심장이 아파 견딜 수 없는 예수는 결국 홀로 파도와 싸우면 한걸음 한걸음 바다로 걸어나가십니다. 본문에서의 진정한 기적은 바로 이 예수의 마음입니다. 불일듯 일어나는 뜨거운 사랑의 마음입니다. 내가 훨씬 더 힘들어도 제자들을 돕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애정의 마음이 바로 기적의 본질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극한의 상황에서도 제자들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한 애정의 마음으로 밤바다를 걸어갑니다. 바로 그 예수께서 오늘 나의 상황 속으로 오심을 저는 믿습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라는 가장 굴욕적이고 고통스러운 고통을 당하셨지만 그 고통의 만분에 일도 안되는 아픔으로 힘겨워하고 눈물짓는 저의 삶의 현장을 향해 오늘도 한걸음 한걸음 어두운 바다를 걸어 오심을 믿습니다. 제자들이 예수께 도와달라고 말할 수 없었지만 이미 예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나아가심처럼 너무나 힘들어서 기도조차 할 수 없을 때, 나는 주님이라는 말조차 못하고 그저 눈물지으며 통곡할 때 주님은 이미 십자가 나의 고통을 보시고 내게 오심이 느껴집니다. 이 사실이야말로 내게 기적이며 감격입니다.

 

제자를 향한 기적의 마음으로 배에 도달하였을 때, 제자들은 예수를 전혀 알아보지 못합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다. 예수께서 그 힘든 몸을 이끄시고 만근같은 고독을 이기며 도와주려고 찾아왔지만 제자들은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고 유령이라고 외쳤습니다. 이런 배은망덕한 사람들이 어디 있습니까? 제가 비오는 날 비에 젖어 오는 아이가 마음에 걸려 바람에 흩날리는 비를 맞으며 우산을 가지고 학교에 갔더니 아들이 저를 빤히 보면서 누구세요? 라고 말한다면 들고 갔던 우산을 그냥 들고 집에 와서는 아들이 오자마자 사생결단을 할 것입니다. 하물며 그 피곤한 몸을 이끌고 찾아간 예수의 마음이야 어떻겠습니까?

 

하지만 예수는 그러한 제자들에게 끝까지 애정을 잃지 않고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참으로 놀라운 인내이자 변함없는 사랑의 모습입니다. 제자들의 태도에 상관없이 한결 같은 이 마음이야말로 본문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기적입니다. 이 기적으로 인하여 바람이 잔잔해지고 배는 순항을 하게 됩니다. 나의 맞바람치는 삶의 현장에 주께서 날 찾아 오시지만 나는 거의 그분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맞바람이 멈추면 이제 멈출 때가 되어서 멈추었다고 생각하고, 문제가 해결되면 나의 능력이라 자랑하고, 더 잘되면 교만해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주께서는 이런 저를 끝까지 도와주시고 풍랑이 멈추는 기적을 베푸십니다. 그래서 전 오늘도 잔잔한 바다 위를 항해하는 기쁨을 누립니다.

 

바다를 걸으시는 기적이 보여주는 예수의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 봅니다. 다 볼 수 없는 주님의 마음이지만 보여지는 부분 만으로도 참으로 감격스럽습니다. 낮은 자의 일을 기꺼이 행하시는 리더십의 마음, 가장 무거운 십자가의 고통을 지신 예수께서 작은 나의 문제를 아파하시고 찾아오시는 사랑의 마음, 자신을 유령이라 비난해도 끝까지 애정의 끈을 놓지 않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위로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기적을 만들어 내시는 이 주님의 마음을 언제나 내 속에 새기고 오늘도 거친 바다를 홀로 건너시는 주님의 모습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립니다.

Posted by 나눔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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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03 21:58

    일명 예수님의 사랑이 묻어나는 기적이네요. 하지만 이번 글은 좀... ^^ 예수님의 사랑과 애정을 강조하려다 너무 나가신 듯...^^ 기적을 예수님의 어떤 의도가 들어가 있는, 특히 사랑이 배어있는 것으로 보는 관점에는 동의합니다. ^^

  2. 2009/10/18 13:31

    재미있는 관점 잘 봤습니다.

    그 기적속에서 있는 예수님의 사랑도 느낄 수 있겠네요.

    저는 모든 기적이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위해서 일어난 것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그런 소외된 자들을 소흘히 하시지 않으신 분이시지만, 그들만을 위해 오신 것은 아니겠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의 핵심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있는 것이 맞다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물위를 걷는 것이나 병을 고치는 것이나, 죽은자를 살리는 것이나, 그 모든 행위의 촛점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는 것이겠지요.

    좋은 글을 접하다, 그냥 딴 생각이 나서 한번 끄적거려 봅니다. 좋은 글 나누어 주어서 감사합니다.

  3. 2009/11/24 20:44

    너무 성경을 윤리적으로 해석하시는 듯. 그가 물위를 걷는 장면은 포퍼먼스가 아니라 그 자신이 하나님이 되심과 그리스도란 것을 제자들에게 보이기 위한 거죠.

    구약부터 예언된 그리스도가 바로 자신이라고...인류 구원의 유일한 길이라고...

    왜 일부러 이적들을 행했습니까..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성경을 좀더 복음 중심으로 보시면 좋겠습니다...

    목회자이신거 같은데.. 성경은 윤리 교과서가 아니라 복음 입니다. 그게 타 종교와 다른 이유이기도 합니다.

혈루증 치유 (마가복음 5:25-34)

 

이 기적은 정리해보면,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은 여인이 예수의 옷자락을 잡고 병이 나았다는 짧고도 단순한 이야기 입니다.

 

이 이야기는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고 몇번씩 설교 시간을 통해서 익히 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이 이야기를 다시 하는 이유는 이 기적 이야기를 읽을 때 내 안에 말씀하시는 주님의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글을 쓰는 글의 제목도 예수의 기적, 예수의 마음이라고 정리해 봅니다.

 

이 이야기가 전개 되어지는 상황은 이렇습니다. 예수께 회당장인 야이로가 찾아와서 죽어가는 자신의 딸을 고쳐달라고 합니다. 예수는 당연히 이를 흔쾌히 승락하고 따라 나서게 되고, 기적을 행하러 가시는 예수의 모습을 수많은 추종자들이 따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 한 여인이 살며시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여인이 바로 12년을 혈루증으로 앓은 여인입니다. 성경에서는 혈루증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혈루증이란 여인이 걸리는게 불가능한 병입니다.

 

중학교 과학시간에 배운대로 혈루병은 피가 멈추지 않는 병으로 X염색체를 따라 유전되는 질병입니다. 남자의 경우는 X염색체가 하나이므로 환자가 되고, 여자는 X염색체가 두 개이므로 환자가 아닌 혈우증유전자를 보유하는 사람이 됩니다. 여자가 환자가 되려면, 환자인 남자와 보유자인 여자가 만나서 아이를 낳을 때나 염색체 이상인 경우이므로 확률이 거의 없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여자 혈루증 환자가 4명 정도라고 하니까 당시 이스라엘의 인구를 생각하면 0%에 가까우며, 혈루증은 유전으로 생기는 병으로 태어나면서부터 환자이므로 이 여인처럼 중도에 환자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성경에 등장하는 여인의 병은 하혈증으로 보여집니다. 하혈증은 병에 걸린 자체도 힘든 일이지만 더 큰 문제가 등장합니다. 구약성경은 여자가 하혈할 때에 불결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하혈하는 여인이 만지는 모든게 불결해 집니다. 이스라엘은 성결법이 대단히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혈하는 여인이 만지면 즉시 그날 밤까지 불결해져서 모든 활동을 정지해야 합니다. 이 여인의 손은 마이다스의 손과 비견됩니다. 마이다스는 만지는대로 금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의 삶은 불행했습니다. 하물며 이 여인과 같이 만지는 모든게 불결해진다면 이 여인의 삶이 어떻게 되겠습니다. 여자는 숫자에도 들지 않은 재산처럼 취급받던 시대에 불결한 여인, 만지면 모든게 불결해 지는 여인은 참으로 낙인찍힌 최악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여인이 병을 고쳐보겠다고 12년 동안이나 이곳 저곳을 찾아 헤멨습니다. 많은 의원들을 찾았고 자신의 모든 돈을 바쳤지만 병을 고치기는커녕 의사들에게 치욕만 당했습니다. 이 여자의 병이 은밀하게 숨기고 있으면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하지만 병을 고치는 의사는 이 여자의 치부를 알고 있기에 더러운 벌레처럼 여기며 치료했고 이는 여자의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치료할 돈도 없고 의사를 만날 용기도 없는 여자는 완전히 자포자기한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남편이나 자녀가 있었더라도 버림받을 수 밖에 없었기에 홀로 숨어 세상과는 단절된 삶을 영위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이미 몸에 든 병만큼이나 그녀의 마음 역시 깊은 병에 침식당해 다시는 회복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그녀에게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갈릴리에서 온 나사렛 예수가 많은 병자를 고치고 있으며, 어떤 사람도 거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풍문으로 들었습니다. 그녀는 예수께 나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마침, 그 때 예수께서 회당장의 딸을 고쳐주기 위해 길을 걷고 있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따라오고 있었기에 그녀 역시 예수를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부터였습니다. 지나가는 예수를 붙잡고 나를 고쳐달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용기가 나질 않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병을 당당히 말할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병명을 말할 때 자기를 바라볼 사람들의 시선을 생각하면 도저히 입이 떨어지질 않습니다. 그녀는 예수를 따르면서 계속 망설였습니다. 예수 앞에 나아가서 말을 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몇 번이고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예수를 불러봤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과 단절했던 12년이, 그녀를 죄인 취급하면서 벌레처럼 바라봤던 사람들의 시선들이 그녀의 입을 막았습니다.

 

여인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떨리는 조급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인은 마음에 생각했습니다. 나는 도저히 예수를 부를 수 없고, 내 상황을 말할 수 없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혹시 예수가 그토록 위대한 치료자라면 옷자락이라도 만지면 병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그녀는 살며시 예수께 다가섰고 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서 몰래 예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그러자 자신의 하혈이 멈추고 완전히 치료되었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꼈습니다. 그녀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하지만 절대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면 오늘 그녀는 예수를 부정한 사람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12년이나 나오지 못했던 여인은 이제 예수의 뒷모습에 진심으로 감사하면서 흐느끼는 감격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께서 돌아보시면서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말하시는 겁니다. 이 여인은 깜짝 놀랐지만 쥐죽은듯 가만히 있었습니다. 오히려 제자들이 자신을 대변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고 예수께 손을 대고 미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말씀을 하시냐며 별일 아니니 그냥 가자고 재촉합니다. 그런데도 예수는 자신의 몸에서 능력이 나갔다고 말하면서 몸을 돌려서 그 여자를 바라보았습니다.

 

이 여자는 예수께서 자신을 처다 보시는 순간 몸이 얼어버렸습니다. 심장은 벌떡벌떡 뛰어서 죽을 것 같고 얼굴은 부끄러움으로 새빨갛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자시에게 주어진 압박과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그만 무릎을 꿇고 예수께 잘못했다고 용서해 달라고 말합니다. 12년 만에 대중 앞에선 그녀는 온 몸이 후들거리고 정신이 없어서 어쩔줄을 모르고 흐느낍니다. 부정했던 여자는 자기가 만져서 부정하게 된 위대한 치유자 앞에서 심장이 폭발할 것 같은 통증을 느꼈습니다.

 

이 여자의 이야기를 잠잠히 듣던 예수께서는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을 엄하게 책망할 줄로 알았던 여자는 깜짝 놀라며 마음에 안심하게 됩니다. 순간적으로 너무나 많은 일을 당한 여인은 눈물을 흘리며 그저 감격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반전입니다. 여자는 자기가 호된 책망과 모욕을 받으리라 생각했지만 예수는 그 여인을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라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예수는 일부러 여자를 대중 앞에 세운 듯 합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는 이 여인에게 심장 떨리는 대중 앞에 서는 일을 시켰을까요? 자신의 옷자락을 만진 여자를 치료하신게 기적이라면, 이 부분이 예수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병이 나았으니 그냥 가면 되는 여자를 불러 세워 사람들 앞에 서게 하시고, 자신의 추함을 고백하게 하시는 예수의 마음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예수는 여인의 병을 고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고 사료됩니다. 예수는 오히려 그 여자의 상처받은 마음까지도 고치고 싶어하셨습니다. 만일 이 여자가 그대로 몰래 돌아갔다고 하면 몸은 고쳐졌지만 일생 짐을 지고 살아야 했습니다. 누구에게 자신의 기적을 말할 수도 없습니다. 예수를 몰래 부정하게 만들었다는 죄의식도 그녀를 괴롭힐 것이 분명합니다. 또한 12년이나 사람들에게 상처받아 일생 대중 앞에 나서지 못하는 숨어사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러한 여자를 예수는 수많은 민중들에게 초대합니다. 그곳에 이 여인 만을 위한 커다란 스테이지를 만들고 주인공으로 등장시킵니다. 그리고는 여인에게 너의 믿음으로 병이 나았다고 말해주면서 너는 세상에서 존경 받을만한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라고 모두에게 선포합니다. 더 이상 세상에 숨지도 부끄러워하지도 말고 당당하게 살아가라고 이 여인에게 힘을 실어 줍니다. 예수의 이러한 선포로 인해 여인은 모든 사람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는 자격을 부여 받았습니다. 누구도 이제는 이 여자를 부정하다고 말할 수 없으며, 예수를 더럽혔다고 비난할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께 인정받은 믿음의 사람이라고 칭찬하게 됩니다.

 

바로 여기에 예수의 따뜻하고 섬세한 마음이 있습니다. 육체의 병으로 인해 생겨나게 된 마음의 병까지도 예수는 온전히 치료하셨습니다. 우리도 살아가다 보면 관계로 인해, 병으로 인해, 직장이나 심지어 가족으로 인해 마음에 병을 얻고 신음할 때가 있습니다. 오직 우리의 마음을 아시는 예수께서 2000년 전에 혈루증 앓은 여인의 마음까지 만져주셨듯이, 오늘날 우리의 상처 입은 마음을 만져주십니다. 기적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예수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우리 모두의 병든 상황과 상처 입은 마음이 예수의 따사로움으로 회복되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나눔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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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03 21:48

    예수님이 여인의 육신의 병뿐만 아니라 마음의 상처도 낫게 했다. 왜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믿음의 사람'이라고 하셨을까요?

    • 2009/10/08 10:03

      그 여인을 모든 사람 앞에서 높여준거지요. 그래야 12년간 세상에게 버림받은 여인의 마음의 병까지 완전히 치료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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